잊다

개나리, 추억을 들추다

너와집속목수 2015. 3. 26. 02:50


정규교육과정을 밟던 오래전 어느날, 양재에서 남산을 넘어 남대문을 찍고 다시 양재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일이 있다. 따듯한 햇살이, 아직 겨울과 이별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두터운 옷차림을 후회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어쨌든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어 하얏트 호텔을 지나가던 버스 밖 창이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나들이를 나온 유치원 어린이들마냥 버스를 좇아오며 노란색 옷자락을 흔들던 개나리는 무료하고 목적 없는 일상에 늘어졌던 내 허파에 묘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남대문을 돌아 다시 양재로 향해 다리던 버스가 남산도서관을 지날 때쯤 한가한 버스 빈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눈에 띄었다.  


크게 소리치면 창을 열고 답할 수 있는 정도로 가까운 곳에 살고, 나보다 두 살 아래던 그 아이 동생과도 몇 번 어울린 적이 있으며, 밤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음을 옮기던 동네 사람이던 그 아이의 이름을 친구가 만든 미팅 자리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벌써 지난 겨울에 벌어진 일이 었으니 어림짐작으로도 넉달 만이었다. 


친구가 만든 미팅 자리에서 모두가 어색함을 내려놓지 못하던 상황에서 대뜸 던진 첫마디가 '나 알죠?'였다. 일행 모두가 이건 무슨 상황인가 궁금했지만 그냥 가까운 데 사는 이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다녔던 초중고교와 가족 관계 등 동네주민 수준으로 서로에 대해 어려뭇이 알고 있던 정보의 진위를 확인했다.  


일행들과 가볍게 맥주를 한잔 했고, 종로에 흔하디 흔했던 주점을 두어 군데 더 돈 뒤, 12시가 넘기 전 버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 아이와는 같은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이 50미터쯤 남았을 때 쯤 그 아이의 집 대문이 나왔다. 그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스물살이란 나이에 왜 그렇게 보낸 건지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냉정하고 심드렁한 시간이 내 청춘의 시작을 차지한건지. 딱히 뭔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 물론 연애 같은 걸 할 줄도 몰랐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좋은 아이였지만 그 몇 시간을 제외하고 우리의 인연은 낯익은 동네 사람으로 되돌아갔다. 


그 아이를,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에 개나리가 춤추던 그 버스에서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다시 만났다'는 표현보다는 서로를 존재를 모른채할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맞딱드린 게 몇 개월 만에 처음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집이 워낙 가깝다 보니 오다가다 여러 차례 얼굴을 마주친 일이 있었다.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집 또는 정류장으로 향하던 그 아이를 보고도 어색한 인사가 불편해 길을 돌아간 일이 몇 번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 아이 역시 나처럼 자신이 상대를 봤다는 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 알은체 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서 길을 간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버스에서 두 눈을 마주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한가한 시간이라 곳곳에 빈 자리가 보였지만 인연이 나름 엉킨 사람을 두고 다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어색한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힘든 일이어서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잘 지냈냐? 학교는 어디냐, 회사는 어디냐, 이 시간에 주로 이 버스를 타냐' 같은 썩 친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 피할 수 없는 대화를 할 때 으레 나누는 건조한 이야깃거리는 채 1분도 되지 않아 동나 버렸다. 견디기 힘든 침묵의 시간을 인내하기 위해 우리는 눈을 창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남산의 옹벽을 노랗게 물들인 개나리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왔다'기보다는 그것밖에 볼 게 없었던 듯하다. 차창을 점령한 개나리 탓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봄이 오는 걸 어디까지 봤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계절을 알리는 여러가지 꽃이 대화의 소재였다. 버스정류장 근처의 멋진 목련, 놀이터 울타리를 장식한 진달래가 꽃망울을 얼마나 키웠는지, 남산의 벚꽃과 여의도의 벚꽃 중 어디가 더 좋은지 등, 20대의 입에서는 듣기가 쉽지 않은,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상이 주된 내용이었다. 


봄에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집으로 가는 긴 시간 동안 끊어질 줄을 모르고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이어졌다. 안면이 있는 동네주민일 때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미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 탓에 흥분한 친구들을 사이에서는 차마 묻지 못했던 이야기도 술술 이어졌다. 그 아이나 나나 몇 개월 전과 현재 사이에 있는 어색한 시간의 원인이나 사건을 복기하여 분위기를 촌스럽게 만드는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성과 어울릴 줄 몰랐던 서툰 나이었지만 버스가 개나리 사이를 달리던 그 시간만큼은 그 아이가 전혀 불편하지 않게 느껴졌다.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평소보다 느린 걸음걸이로 집으로 향했다. 집을 절반쯤 남겨두고 잠시 이어진 침묵을 메우는 최선의 방법은 '주말에 같이 꽃구경 갈까?'나 '언제 영화나 보러 갈까?'라는 질문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지난번처럼 손을 흔든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서로에게 서로가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지만 동네주민이란 인연의 고리는 더 이상 짧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요즘은 만나는 사람 있냐?는 질문을 하고 '그 뒤로는 전혀'라는 의미 있는 대답을 듣고도 우리는 후일에 대한 기약 없이 각자의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 뒤 동네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일도, 버스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사를 갔는지, 서로 활동하는 시간이 완전히 다른 탓인지는 알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한두 명쯤 사라져도 난자리가 티나지 않는 동네주민처럼 그렇게 잊혀갔다. 


20년 전에 핀 개나리와 생애전환기를 맞은 지금 핀 개나리는 같지 않다. 노란꽃을 보고 드는 생각과 기분도 예전과는 다르다. 사람을 수다스럽게 만드는 봄꽃의 매력만이 그때와 같을 뿐이다. 


개나리, 지금도 좋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