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6 계룡산에 오르다
4월 6일은 평일이지만 교육 일정상 학원 휴일로 지정되었다. 여느 휴일이라면 애들과 함께 놀거나 나들이를 갔을 테지만 집사람도, 애들도 쉬는 날이 아니다. 딱히 집에서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성오 형님과 계룡산에 가기로 했다.
쉬는 날도 없이 교육 중인 원장님께 4월 3일 금요일에 "월요일 별 거 없으면 함께 계룡산에 가지 않으시겠냐?"고 물었더니 상담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금요일 일과가 끝날 때쯤 "월요일은 휴일이니 잘 쉬시고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참고로 기숙사팀은 월요일에 계룡산 산행을 한다니 함께 하실 분은 같이 다녀오시죠." 귀찮으면 취소할까 생각한 일이 덜컥 커져버리는 순간이다.
월요일 아침, 날이 추적추적한 게 산에 가기에 썩 좋은 날이 아니다. 잽싸게 대전쪽 날씨를 확인하니 아직은 비가 오지 않고 있지만 한두 시간 뒤부터는 비가 올 확률이 크단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 속에서 모처럼의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만 "월요일 동학사 주차장에서 9시에 만나자"하신 여러 동료분들의 얼굴이 떠올라 5시에 울린 알람 소리를 원망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6시 15분쯤 의왕 휴게소에서 성오 형님을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성오 형님은 등산이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으나 금요일 귀향길에 지갑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혼자는 대전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반 강제로 등산에 동참하게 된 눈치다.
대전에 도착할 때쯤 "오늘 산에 가는 게 맞냐?"는 문자가 왔다. 학원의 유일한 경상도 남자 여승우 씨의 문자다. 모이는 거라면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함께 차를 탈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여승우 씨를 태운 뒤에 계룡산으로 향했다. 지난주에 함께 가겠노라 약속한 하종석 반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계신단다. 4~5년 전에 오른 적인 있던지라 크게 낯설지 않은 길을 따라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까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반장님은 이미 인원수에 맞춰 국립공원입장권을 끊고 기다리고 계신다. 산 중턱 남매탑에서 샌드위치며, 사과 등으로 요기를 했다. 모두 하반장님이 준비하신 음식들이다. 시간을 잠시 내어서 불전함에 천원짜리 한 장을 넣고 초를 들어 동행한 교육생들의 성을 쓰고 무사기원을 빌어보았다. 기복신앙이 종교를 망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이런 모순된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난 입만 산 놈이 맞다.
늦게 도착한 정진경 형님께 우리 위치를 알려드리고 보니 차이가 너무 커서 산에서 만나 함께 길을 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튼 발길을 서둘러 운무가 휘몰아치는 암릉길을 계속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만 물줄기를 떨어뜨린다는 은선폭포에 이르러 사진을 한 컷 찍으려니, 이미 등산객 한 팀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옆자리에 서서 전화기를 자동 촬영 모드로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 탓에 은선폭포의 멋진 자태는 담지 못했다.
좀 더 내려가다가 캔 맥주를 나눠 마시는 것으로 잠시 목을 축였다. 캔맥주 다섯 개에 물 1.5리터를 챙겼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 탓에 물 두 병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왼쪽으로는 카스, 오른쪽 뒤로는 백엽상이 보인다. 덕분에 며칠 뒤에 들은 수업에서 언급된 백엽상이란 단어에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이 맘 때면 강화도 고려산이면 부천 원미산 진달래 동산도 곱게 물이 들었을 것이다. 고려산은 산의 한쪽 사면 전체가 진달래 군락이어서 마치 산 전체가 불이 난 듯 붉게 물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계룡산 자연성릉을 따라 네 시간 정도 산길을 마치고 내려와 동학사에서 쉬고 있는 정진영 형님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유원지 식당에 자리를 잡고 파전과 옻닭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술을 몇 잔 마신 내 대신 정진영 형님이 숙소까지 운전대를 잡아주셨고, 술이 약간 모자랐던 성오 형님과 나는 점검차 학원에 방문했다가 원장님과 함께 삼겹살과 소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소주와 맥주를 조금 사다 마시고는 숙면에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