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 대전건축박람회는 지역 건축인의 모임 같은 자리라고 생각될 만큼 규모가 조촐했다. 그래서인지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건축박람회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학원이 쉬는 날 대전에서 모여서 출발하자는 사람들이 몇 있었으며, 다시멸치육수 장인 BH는 며칠 전부터 일산 킨텍스에 가지 않을 테냐고 물어왔다.
처음 계획인 전기공사일을 하는 친구를 따라 현장 견학과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스케줄이 조금 꼬였다. 의정부 현장에 있던 놈이 엉겁결에 수원 숙소로 가버린 것.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합정동으로 온 친구를 태워 의정부에 도착해 밥을 먹은 뒤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손잡이에 전선 피복을 씌운 커다란 벤치를 오랜 만에 다시 본다. 현장은 10층 규모의 상가였다. 친구에 말에 따르면 상가가 비교적 배선 작업이 간단한 편이며, 아파트가 좀 더 복잡하고 배울 것이 많단다. 관공서나 학교는 거의 모든 배선이나 AV 케이블이 최신식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익히기에 좋다고 한다.
전선 몇 뭉치를 들고 현장으로 갔다. 상가나 사무실은 주택과 달라서 천장이 매우 높다. 9단 사다리를 끝까지 빼서 맨 위로 올라가 작업을 하는데, 슬쩍 봐도 아슬아슬한 게 만만치가 않다. 등공통과 스위치 공통을 등공통 -, 등공통 +로 구분해 부르는 것이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요비선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학원에서 쓴 것보다는 검정으로 된 제품이 더 잘 미끄러지고 구부러진 구간도 잘 빠져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웬만한 입선은 요비선 없이 그냥 전선만 밀어넣는다고.
3m 높이로 세운 사다리에 올라가 CD관에 요비선 없이 입선 작업을 하니 처음에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등 박스에서 스위치까지 10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였지만 끝 부분에서 전선이 뭔가에 걸려 후퇴와 전진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입선을 마칠 수 있었다. 2층 등 박스와 스위치를 모두 연결할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입선 몇 개 만에 12시가 되었다. 슬슬 일산으로 이동을 할 때가 된 셈이다. 나머지 전기 설비 교육은 나중을 기약하고 일산으로 출발했다.
킨텍스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주차장을 크게 돌아서야 차 댈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전시관 안쪽으로는 건축회사들의 샘플 주택이 나란히 서 있는데, 팬션왕이 생각한 트레일러 주택, 컨테이너 개조 주택, 다양한 평수의 이동식 주택과 내외장을 고급스럽게 꾸민 너른 2층 집까지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중목 구조 주택을 전시하는 회사도 눈에 띄었다. 적게는 평당 500부터 시작하는 건축비가 문제긴 하지만 실내에 나무 기둥과 보가 노출되는 중목 구조는 목조 주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면에 맞춰 미리 자재를 잘라다가 현장에서 끼워맞춤으로 조립하는 중목구조 시공 업체도 눈에 띈다. 일본식 중목구조와 달리 철물을 거의 쓰지 않아 공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 경량목조주택 설계도만 있으면 그것으로 중목재에 맞게 도면을 변환해 프리커팅하는데, 커팅부터 시공까지 열흘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비용이 얼마나 들지는 견적을 내야하겠지만 전시회장에서 본 것만 따지면 꽤나 매력적인 공법임에 틀림없다.
팬션왕이 관심 있어 하던 트레일러 주택이다. 캠핑장 안에서 카라반 배치를 바꾸기가 수월할 듯 싶다.
중목구조 주택의 시공 단면이다. 타이벡과 시멘트 사이딩이 붙는 것은 동일하지만 단열재가 한겹 더 붙는다. 벽체 내부에 단열재를 넣고 굳이 외부에 단열재를 더하는 게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 참가업체의 전시 주택 내부의 목재 몰딩이다. 재단면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전시장에 내는 집을 이 모양으로 짓다니 건축 수주를 할 의도가 없는 게 분명하다.
600만 원 정도로 중목구조 주택을 시공하는 업체다. 물론 이 비용은 시작 비용이고, 자재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방식은 경쟁력이 높지 않다 하겠다.
프리컷팅하고 현장에서는 짜맞춤식으로 골조를 만드는 업체다. 비용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경량목조보다 더 매력적인 공법이라 하겠다. 공장에서 목재를 재단하는 기간이 7일 정도, 현장에서 조립하는 데 이틀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골조가 올라가는 시간은 경량목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woodnice.com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골조를 세우는 데 평당 1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 듯 하다.
컨테이너를 주택으로 꾸민 업체도 참가했다. 한쪽 외벽에 온수기와 에어컨 등의 시설을 몰아 넣은 것이 특이하다. www.boaskorea.com에 가면 좀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3D 도면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시연되었다. 오큘리스 리프트를 이용해 시연하고 있었는데, 프레임이 초당 10장 정도로 매우 느려서 정상적인 체험이 불가능했다. 앞으로 더 향상된 가상현실 디스플레이가 등장하면 해결될 문제이고, 소프트웨어의 제한도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앱에서 간단하게 스케치업의 3D 도면을 불러와 카드보드 같은 장치로 돌아보는 일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니다. 남보다 먼저 이런 기술에 투자하는 것인 대부분은 내 돈 내고 베타테스터에 지원하는 꼴이 되기 쉽다. 단, 기술의 흐름은 늘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유통사 홈페이지(www.fuzor.co.kr)이며, 설계 프로그램과 이를 가시적인 3D 영상으로 구현하는 프로그램이 서로 짝을 이뤄 작동한다. 오큘리스 리프트는 퓨저란 프로그램의 출력장치로 사용된다. 설계 프로그램은 오토데스크의 레빗을 활용한다.
참가업체 중 가장 큰 주택을 세운 더존은 설계, 영업, 법무와 홍보, 건축팀 등을 완벽하게 갖춘 비교적 규모가 큰 업체다. 규모가 크고 경험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건축주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경쟁요소는 없는 듯하다. '우리는 잘 그리고 꼼꼼하게 지어드려요'만으로 승부를 할 수는 없는 일. 머지 않는 미래에는 이런 저런 업체가 모두 경쟁자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긴장된다.
이리 저리 돌아보다가 보쉬 대리점 부스에서 친구는 임팩트 드릴을, 나는 멀티커터를 하나씩 구입했다. 나중에 인터넷과 비교해 보니 그다지 싸지도 않다. 물건은 역시 오픈마켓 쿠폰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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