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산소 없이 살 수 없다. 산소를 부산물로 여기는 생명체도 있지만 산소를 소비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인데, 산소는늘 주위에 있는 것이고 가치를 따지지 않는 것이어서 귀한 자원인 줄 모를 뿐이다. 산소가 없다면 어떤 에너지도 생성할 수 없다. 빛, 열, 운동, 소리 등 존재하기 어렵다. 산소가 이런 에너지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에너지 생성 활동에 반드시 산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산소가 필수항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산소가 없다면 에너지 보존 법칙을 정리할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현 시대에 인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에너지는 수력, 화력, 원자력, 조력, 풍력, 태양력 이 따위 것이 아니라 전기력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에너지는 대부분 전기력을 생성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중력과 전기력, 자기력으로 구분된다. 최근까지 우리는 중력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서야 전자기력이 중력보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나무를 키우는 것은 태양과 지구의 산소 순환 과정이고, 우주가 길러낸 에너지의 응축체를 인간이 잘라 활용할 때 목재라는 말을 쓴다. 현재 내가 배우는 일은 목재를 이용해 집을 짓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고 해도 전기 에너지가 없다면 헛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기를 배제하는 자연 친화적인 삶을 누리는 게 배부른 일부 서구인들의 취미이라지만, 전기 역시 자연의 중요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전기 없는 삶이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삶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짓고 있는 6평짜리 농막 역시 마찬가지다. 상하수도, 가스나 기름, 통신 같은 시설이 없으면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전기가 없다면 인간은 하루도 버티기가 힘들다.
말이 삼천포에 갔다가 명왕성 외곽의 외소행성 지대까지 빠졌는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교육생들이 전기 설비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이었다. 조명과 전열, 냉난방까지 집이란 구조물에 생명을 더하는 에너지가 바로 전기인 때문이겠지.
강의실 벽은 OSB로 거칠게 마감이 되었는데, 이를 이용해 전기 회로 구성 시범이 펼쳐졌다. 이런 수업을 위해 OSB를 노출시킨 건 아니겠지. 아무튼 원색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원장님을 둘러싸고 수업을 듣느라 제 자리에서는 뭐 수업 내용이 보이지가 않을 정도다.
등 2개가 연결된 스위치 회로를 구성했다. 평소 스위치 박스를 교체할 때 왜 이런 식으로 전기선이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있는 그대로 회로를 재현했는데, 요걸 배우고 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옥내 배선에 대해 알 것 같다. 지난해 친구 따라 일하러간 전기 현장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CD관과 콘넥타, 스위치 박스, 조인트 박스 같은 낯설지 않은 용어를 오랜만에 들으니 의정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친구가 생각나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스위치 박스에 전기선을 연결하는 모습이다. 점프선은 무엇이고, 전선을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랜 테스터를 잡아봤고, 랜 툴로 케이블도 찍어봤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랜 케이블이 집안에 들어올 일이 많지 않다. 대부분은 광랜이 집으로 바로 찍힌다.
수업을 듣고 남은 시간과 남은 전선을 이용해 '졸라맨'을 만들었다. 요런 깜찍한 장난을 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큰형님과 팬션왕의 관심을 받았다.
BGM은 페퍼톤즈의 [공원여행]이다. "거 봐. 너 아직 그런 미소 지을 수 있잖아~"
라일락이 피고 향을 내고 아름다운 색을 뽐내는 것도 전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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