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의 발원지는 중국과 몽골이라지만, 요즘의 날씨는 다른 나라에게 대기 오염의 책임을 전가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숙취 뒤에 갈증을 풀어보려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들이키는 술꾼이 쓰린 위장을 적시듯, 바싹 마른 땅에게 넉넉한 수분을 공급한 뒤 저녁 늦게서야 하늘이 개었다.
아침은 어제 덮어둔 천막이 주택의 토대를 잘 덮고 있는지, 비가 고인거나 새는 곳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조용히 나가서 혼자 정리하고 돌아오는데, 삼촌뻘인 어르신이자 동기 교육생 한 분이 내려오신다. 옆 팀 천막은 '물이 많이 고인 탓에 혼자 할 수 없어 상황을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하니 부끄럽게도 대뜸 '그냥 둘이 하자'며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함께 배우는 어르신들은 참으로 본받을 점이 많은 분들이다. 아들뻘인 사람들에게 깍듯한 경어를 쓰고, 30도로 인사를 드리면 45도로 돌려주실 줄 아는 '어른'이다. 오늘 약간 난처한 일이 생겨, 미리 상의하지 않고 진행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되레 신경 쓸 일 만들어 미안, 아니 죄송하다며 연신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배움의 결과가 어떨지 몰라도 '이런 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꾸며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얻을 부분이 많다.
다른 건축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목조주택은 비가 오면 작업 진행이 아니라 수분 차단에 더 주력해야 한다. 목재를 덮은 천막을 정비한 뒤 앞으로 만들 벽체와 창문 등의 작업을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며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21세기는 솜씨뿐 아니라 그럴듯한 포장 기술이 겸비되어야 하며, 여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곁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 스케치업은 건축 기술 숙련도보다 소비자의 마음을 잡아끌고, 작업 정확도를 높이는 데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경계의 끝은 없다.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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